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제리 전쟁 (문단 편집) === 아르키와 피에 누아르가 겪은 수난 === 전쟁 당시 아르키(Harki)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알제리계 보조병은 프랑스 편에 서서 싸웠는데 당시 프랑스군에는 1962년 기준으로 총 26만 명이나 되는 아랍인 병사가 있었다. 평화협상이 진행될 때 프랑스와 알제리는 아르키들을 차별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막상 독립하자 그 약속은 휴지가 되었고 이제 [[매국노]]가 된 그들에게는 알제리 전역에서 [[끔살]]이 기다릴 뿐이었다. 당사자 본인은 물론이고 어린아이를 포함한 가족들까지 죽음을 피할 수 없었는데 노인들은 굶겨죽이고 여자들은 사창가로 팔아넘기고 남자들은 [[지뢰|지뢰밭]]에 맨몸으로 떠밀리기도 하고 광장으로 끌려나와 사람들의 욕설과 같이 침으로 범벅이 되어 산 채로 몰매를 맞아 죽거나, 총살당하거나, [[화형]]을 당하거나, [[거세]]당하거나, 광장에서 목 매달린 시체로 며칠이고 방치되었는데 그 수는 최저 3만에서 최대 15만으로 추정된다. 심지어 처형당하기 전에 프랑스군에서 받은 [[훈장(상훈)|훈장]]을 직접 삼켜야 하기도 했다고 한다. [[학살]]이 벌어지기 전에 알제리를 탈출한 91,000명의 아르키와 그 가족들은 프랑스로 도망가서 살아야 했다. 사회 명사, 공무원, 고급장교 등 엘리트 아르키들은 프랑스에서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고 프랑스 정계에 닿은 연줄을 통해서 정착도 쉬웠지만 일자무식의 농민 출신 아르키들에게 프랑스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건 온갖 잡일과 차별뿐이었다. 그렇게 알제리에서 쫓겨나고 프랑스에서도 차별받으니 이들이 사우디발 [[와하비즘]] 선교에 현혹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당시 알제리의 주류 정치권은 [[아랍 사회주의]]가 대세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들이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되는 경우가 상당했다. 당시 프랑스는 사실 아르키가 아니라 피에 누아르들조차도 받고 싶지 않았다. 100만명이나 되는 피에 누아르와 알제리 [[유대인]]들이 피난 오는 상황에서 프랑스 정부는 아르키들에게 프랑스 군대 편입과 즉시 전역이라는 선택지를 제시했고 민족해방을 선전한 FLN의 협정도 있거니와 설마 자신들을 죽이겠거니 싶었던 아르키들의 대다수는 전역을 선택했다. 4천명도 안 되는 소수의 아르키들만 프랑스군에 편입되었다. 하지만 앞서 서술된 광란의 대학살극이 벌어지기 시작하자 아르키들은 허겁지겁 프랑스에 보호를 요청했지만 프랑스는 [[에비앙 협정]]을 구실로 개입을 거부하였고 새로운 알제리 정부와의 관계 악화를 원하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프랑스는 아르키들 상당수가 FLN 첩자라는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프랑스는 아르키들이 무기를 FLN에게 넘겨줄까봐 매우 철저하게 무장해제시켰는데 무장 해제에 투입된 프랑스군은 아르키들에게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낡은 무기를 신품으로 바꿔 주기 위해서]] 무기를 회수한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그리도 프랑스는 아랍계 무슬림인 이들이 기독교 백인 국가인 프랑스의 인종적 순수성을 더럽힐 것이라고 꺼렸다. 결국 프랑스 장교단의 개입이 더해져 4만명 정도가 가까스로 탈출할 수 있었고 추가적으로 만명이 프랑스로 밀입국했다. 이 상황을 보면 가서 천대를 받을지언정 프랑스로 갈 수 있었던 아르키들은 행운아라고 해야 할 정도. 이때 도망친 아르키 중 한 사람이 그 유명한 [[지네딘 지단]]의 아버지이다. 알제리에 살던 유럽인, 즉 [[피에 누아르]]들의 처지도 아르키나 마찬가지였다. 백인이지만 알제리에서 100년이 넘게 살다 보니 모국이 낯설고 알제리에 모아둔 재산은 죄다 가루가 되었으며 급히 챙길 돈이나 귀중품만 가지고 프랑스로 가 보니 프랑스에서는 이들을 아니꼽게 보았다. 드골 정부는 이들에게 가급적 알제리에 남고 정 알제리를 떠나고 싶으면 브라질로 대신 가라는 대안을 제시했지만 결국 드골 정부의 당초 예상인 38만명을 훨씬 넘는 90만명의 피에 누아르와 10만명의 유대인이 프랑스로 이주했다. 하지만 이들은 프랑스 제국의 붕괴를 상징하여 프랑스 민족주의에 상처를 주는 존재들이었고 정체성도 크게 달랐다. 결국 [[미국]]이나 다른 나라로 이민가거나 다시 [[튀니지]] 같이 프랑스어가 많이 쓰이지만 프랑스에 대한 증오가 덜한 이웃 나라로 이민을 가서 살기도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떠나는 이들만 속출했다. 알제리가 아르키 후손들을 용서해 주면서 이들 일부가 프랑스로 가서 살기도 하는 와중에 피에 누아르들도 알제리로 돌아가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 피에 누아르들은 알제리 독립 당시 몰수당한 농장이라든지 여러 재산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알제리 측은 전혀 그럴 마음이 없다. [[청년실업]] 문제 해결이 급한 상태인 데다 알제리 정부 입장에서 농장을 다시 되돌려 준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에 다시 줄 이유도 없다. 프랑스 측도 알아서 하라는 투로 물러서기에 실현, 반영될 일은 없어 보인다. 프랑스로 '''귀국'''한 피에 누아르들은 대부분 [[프로방스]] 지방에 정착했는데 오늘날 이곳은 극우파 [[국민연합(프랑스)|국민전선]]의 주요 정치적 기반이 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